키친 / 요시모토 바나나
오랜만에 책장에서 다시 꺼내 본 요시모토 바나나의 처녀작, 소설 '키친' 을 읽었습니다.
한창 일본 소설에 빠져 있던 20대 시절에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다시 읽어 보니 그 시절 감성이 떠오르기도 하고 처음 읽은 소설처럼 또 다르고 새롭게 다가왔던 소설입니다. 거의 20년 만에 꺼내 본 소설인데 문체가 참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소설이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네요.
이 작품은 일본 유명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3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으로 80년대 말 당시에 주목받았던 작품이었고 작가 역시 단번에 주목을 받게 된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도 90년대 말에 번역되어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었어요. 작품의 주요 내용은 사랑했던 가족과 연인이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삶을 이어가기 위해 서로 다독이며 위로하는 따뜻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줄거리
1. 키친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사쿠라이 미카게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된다. 어느 날, 미카게에게 비슷한 또래의 한 청년이 찾아온다. 할머니가 생전에 다니던 단골 꽃집의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유이치. 묵묵히 할머니의 장례를 거들어 주고 후에 자신의 집에 초대하였고 성전환 수술을 한 유이치의 아빠 에리코 (엄마?)와 함께 세 사람은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미카게는 유이치와 에리코의 위로를 받으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부엌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고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2. 만월
키친과 이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카게는 요리 연구가의 어시스트로 취업하여 유이치의 집에서 독립하여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날, 유이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유이치의 아빠이자 엄마인 에리코가 살해 스토커에게 살해당했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반년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깊은 애정을
품었던 미카게는 전화를 받고 바로 유이치에게 달려가 이번에는 미카게가 유이치를 위로하고 함께 슬픔을 나누게 된다.
3. 달빛 그림자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애인 히토시를 잃은 사츠키. 슬픔을 극복하고자 매일 조깅을 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히토시의 동생인 고등학생 히라기는 역시 그날의 교통사고로 자신의 여자친구와 친형을 모두 잃게 되었고 슬픔을 이기기 위해 여자친구의 세일러복을 입고 등교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깅을 하던 사츠키는 애인을 사고로 떠나보냈던 다리에서 우라라라는 신비한 여인과 만나게 된다. 우라라에 의해 죽은 애인의 환영을 보게 되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게 되면서 상처를 이겨내게 되고 히라기도 마찬가지로 같은 경험을 하게 되면서 상처를 치유받게 된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작가는 특유의 문체와 독특한 캐릭터 설정, 따뜻한 감성으로 이야기를 채워나갔습니다. 부엌이 좋아서 한동안 부엌 바닥에서 잠을 자는 미카게, 아내를 잃고 성전환 수술을 하여 게이 바에서 일하는 에리코, 여자친구를 사고로 잃고 여자친구의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히라기 등등 공감은 되지 않지만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오컬트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어 개성 있고 따뜻하게 풀어내는 이야기가 너무 좋았던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 중 인물들의 치유와 성장 과정을 통해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어느 쪽이 좋은지. 인간은 선택할 수 없다. 각자는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져 있다. 자신이 실은 혼자라는 사실을 가능한 한 느끼지 않을 수 있어야 행복한 인생이다.
- p. 79
세상에는 딱히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쁜 일이 생길 확률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나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다른 일에는 대범하게, 되는 대로 명랑하게 지내는 편이 좋다.
- p. 110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오랜 시간. 강바닥을 헤매는 고통보다는 손에 쥔 한 줌 사금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p. 194
저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경험을 겪었고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가족들과 함께 보듬으며 위로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해 나가고 서로 위로하며 성장해 가는 인물들을 통해 어느 정도 동질감도 느낄 수 있었고 위로도 되었습니다. 저처럼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