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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스포츠스타

데니스 로드맨 (Dennis Keith Rodman)

by 디케이84 2025.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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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적 좋아하던 스포츠 스타들의 대한 포스팅입니다. 그저 순수하게 제가 좋아했던 스타들을 추억하며 블로그에 담아 기억하고 싶은 취지로 포스팅하는 것이며 전문적인 정보는 없고 내용도 상당히 빈약하다는 점 양해 부탁드리며 그냥 가볍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포스팅은 전설의 NBA 스타 '데니스 로드맨' 입니다.

데니스 키스 로드맨 (Dennis Keith Rodman)

생년월일 : 1961년 5월 13일
국적 : 미국
신체 : 201cm, 100kg
포지션 : 파워포워드
소속 팀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샌안토니오 스퍼스, 시카고 불스, LA 레이커스, 댈러스 매버릭스
등번호 : 10번, 91번, 73번, 70번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리바운드 하나를 위해 세 번, 네 번 점프한다는 것이다. 내가 세 번, 네 번 점프를 하는 동안 다른 녀석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정신을 못 차린다.

 

 

데니스 로드맨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리바운드 왕'이라는 칭호입니다. 역대 파워포워드 중 최고의 수비수이며 NBA 사상 최고의 리바운더라고 할 수 있고 과거 시카고 불스 어벤저스 중 한 명으로 조던, 피펜과 함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선수입니다. 210cm가 넘는 선수들이 판치던 코트에서 201cm라는 비교적 왜소한 체구에도 7년 연속 리바운드 왕의 자리를 차지했고 공격보다는 수비 위주의 선수로 몸 사리지 않는 선수로 유명합니다.

 

득점은 평균 이하이지만 그가 잡은 리바운드와 곧바로 이어지는 패스로 팀의 득점을 일으킵니다. 즉, 그에게 수비가 공격인 셈이죠. 또한 지치지 않는 체력과 힘 근력, 스피드, 머 하나 빠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의 플레이 명장면 중 공을 잡기 위해 몸을 날리는 사진이 있는데 그의 집념이 대단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의 모델이 데니스 로드맨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몸을 날리는 장면이 많이 흡사하네요.

 


데니스 로드맨은 어릴 적 어두웠던 성장 과정을 겪었습니다. 3살 때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고, 4명의 엄마 사이에서 자식이 무려 27명이나 됐다고 합니다. 로드맨은 그중 장남이었죠. 또한 굉장히 폭력적인 아버지여서 성장 과정에서 성격이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키가 2미터가 넘지만 만 16세까지 168cm에 작고 왜소하여 덩치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많이 하고 농구를 해본 적 없고 농구하고 거리가 먼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인생에 서광이 비추기 시작한 것은 일 년 만에 갑자기 키가 자라 고등학생 때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하고 NBA 프로에까지 진출하게 된 특별한 케이스였습니다. 성장과정은 로드맨이 좀 더 암울하지만 갑자기 자란 키와 농구로 성공한 케이스가 전에 포스팅 한 피펜하고 닮았습니다. 

 

내가 누구냐고? 무명 대학 나온 무명 선수다.

 

로드맨의 대학 선수 생활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유명하지 않은 대학과 리그에서 활동하였고 1986년 낮은 지명 순위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팀에 입단을 하게 됩니다. 루키 시절 단순히 백업 위주의 선수였지만 당시 팀의 주전 선수가 부상을 입고 대신 스타팅 멤버로 출전하게 됩니다. 무명 선수였던 로드맨을 알아봐 준 것은 당시 명장 감독 척 데일리였습니다. 무명 선수였던 로드맨은 척 데일리 감독의 지도 아래 NBA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들이 꺼리는 수비와 리바운드에 집중하였고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와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후 로드맨은 팀의 당당한 주전 선수로서 활약하며 1989년과 1990년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황금기를 누리게 됩니다.

 

1992년 정신적 지주였던 척 데일리 감독이 해임되고 황금기의 선수들이 트레이드되면서 팀의 성적은 갈수록 떨어지게 됩니다. 로드맨은 이 당시의 상황이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고 자살 충동까지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 시점에서 샌 안토니오 스퍼스로 트레이드되고 2년간 뛰게 됩니다. 당시 스퍼스의 최고의 리더이자 막강 센터 데이비드 로빈슨과 함께 시즌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지만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하여 팀 우승까지 가지 못합니다. 이후 로드맨과 팀과 마찰이 자주 발생하였고 팀 훈련에 자주 지각하고 오토바이 타다가 부상을 당하는 등등 로드맨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스퍼스는 끝내 1995년 로드맨을 헐값에 시카고 불스로 트레이드시키게 됩니다.

 

 

시카고 불스로 트레이드된 데니스 로드맨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최고의 라인업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과 함께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우승 3연패라는 최고의 성과를 이루어 냅니다. 트레이드 당시 고집이 센 조던과의 마찰이 생기지 않을까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조던은 성향은 팀에 피해만 주지 않으면 코트 밖에서 무엇을 하던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에 팀은 좀 유별났던 로드맨의 사생활까지 터치한 반면 시카고 불스는 몸 사리지 않고 팀 동료에게 도움을 주는 팀 플레이어 로드맨에게 딱히 터치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리바운드뿐만이 아니고 샤킬 오닐, 숀 캠프, 칼 말론 등등 쟁쟁한 괴물급 선수들도 담 마크하여 꼼짝 못 하게 할 정도의 수비수였습니다. 평균 경기당 15개씩 리바운드를 잡아내고 왕조 시카고 불스를 건설한 중요 선수 중 한 명이었던 데니스 로드맨은 이후 조던 은퇴와 피펜 이적으로 불안정한 팀을 떠나 LA 레이커스로 이적합니다.

 

시카고를 떠나 1999년 LA 레이커스, 2000년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2년간 선수 생활을 하였지만 별다른 활약은 보이지 못했습니다. 시카고 불스 시절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죠. 후 핀란드에서 선수 생활을 연장했지만 어느새 불혹의 나이가 된 로드맨은 결국 자연스럽게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 트로이트 피스톤은 그의 업적을 높이 사 당시 그의 등번호 10번은 영구 결번되었고 2011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데니스 로드맨은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유명했습니다. 다양한 색깔과 문양으로 잠시도 머리카락을 가만 놔두지 않았었는데요. 이 점이 저는 좋았습니다. 현재까지도 꾸준히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고 있으며 독특한 스타일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영화배우로서도 꽤 많은 영화에 출현했습니다. 그중 생각나는 영화가 장 클로드 반담과 함께 출현한 액션 영화 더블팀이 떠오르네요. 또한 기이한 행동으로 유명하고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었는데요, 섹시 스타 마돈나와의 스캔들, 헐크 호건과 프로레슬링 경기를 하는 등
늘 화제에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피 반대 운동 캠페인 용도로 누드 사진을 찍기도 했고 자서전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린 뒤에도 그의 기이한 행동이 이어지는데요. 2013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죠? 김정은은 데니스 로드맨의 팬으로서 그를 초청하게 되었는데 극진한 대우를 받은 로드맨은 이후 여러 차례 방문하고 "김정은은 독재자가 아니고 좋은 사람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어 엄청난 안티팬을 보유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로드맨의 북한 방문은 정치, 외교적으로 주목할 만한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 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선수였지만 선수 시절 그의 플레이를 보며 열광하고 흥분했던 저에게는 영원히 코트 위의 악동이자 리바운드 왕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상으로 데니스 로드맨에 대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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