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슈이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 '동경만경' 을 읽었습니다.
지난번에 포스팅 한 악인과 함께 오랫동안 저의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이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도쿄 만의 부두 창고에서 근무하는 남자와 도쿄 만 건너편 대기업 빌딩에서 근무하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세간에 평판이 자자한 연애소설을 읽어도 끝까지 다 읽어낼 수가 없었다. 결국 사랑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게 아닌가 하고 늘 혼자서 분개하곤 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과 세상에서 인정하는 사랑이라는 게 별개의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은 적도 있었다.
P.262
책 속 위 글이 작가의 생각이었을까요?
진부한 로맨스 소설이 아닌 좀 더 성숙하고 진지하게 다가간 연애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또한 어딘가 소설 '악인'의 등장인물들과 닮아 있는 주인공 남녀는 너무도 외로워 보였고 미팅 사이트를 통해 인물들이 만난 것도 비슷하고 전체적으로 이 소설을 집필하고 악인을 구상했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이 소설은 2004년 일본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원작과 많이 다르다고 하네요.
줄거리
시나가와 부두의 노동자 료스케, 어릴 적 실연에 상처를 받고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
오다이바의 대기업 홍보부에서 일하는 전도 유망한 커리어 우먼 미오. 사랑의 존재를 부정하는 여자.
그들은 가볍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미팅사이트'를 통해 첫 만남을 약속한다. 자신을 지하철역 매점 직원이라고 속인 미오는 료스케의 서툰 행동에 거부감을 갖는다. 그러나 모노레일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료스케의 낡고 작은 아파트를 함께 찾아보며 들뜬 기분이 되는 두 사람...
출처: 출판사 책 소개
'빠지다'라는 말과 '탐닉하다'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
'탐닉하다' 는 감각적인 문제지만 '
빠지다' 라는건 영혼의 문제다.
P. 120
위 글은 소설 속 인상적이었던 구절입니다. 소설 속 두 남녀는 누군가에게 빠지고 싶지만 상처받기 두려워 서로 탐닉하는 관계를 유지합니다. 사랑은 행복을 안겨 주지만 상처도 동반되기에 그리고 사랑과 사람은 변하는 걸 알기에 두 사람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육체적인 관계에 몰두하지요.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은 어플이나 인터넷을 통해 충동적이고 가벼운 만남을 하는 현시대 남녀 관계, 나아가 인간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랑과 관계에 관해 부정적이었던 두 사람은 사랑과 사람도 변한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서 탐닉에서 빠지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이렇듯 사랑과 관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기면서 결말은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되는데요. 소설 속 인물들처럼 상처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사람도 변한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면 연인 관계를 넘어서 좀 더 성숙하고 발전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소설에서도 작가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두 인물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배경을 사용하는데 시나가와와 오다이바는 눈앞에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이지만 사이에 가로막힌 바다 때문에 우회해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통해 간접적으로 두 사람의 거리가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분위기 있는 부둣가 컨테이너 창고, 마주 보고 있지만 그와 상반되는 분위기를 풍기는 빌딩들과 화려한 레인보우 브리지, 모노레일... 마치 영화 속 장면을 보는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줄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이는데 그만큼 저자가 조사를 많이 한 듯 보였고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여낸 작가의 필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을 이번까지 3번 읽었습니다. 돌아보면 20대 때 도서관에서 한 번 읽고 너무 좋아서 구매 후 또 한 번 읽었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현재 40대 때 또 한번 읽었을 정도로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제가 읽었던 연애소설 중 가장 좋아하고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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