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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 오쿠다 히데오

by 디케이84 2025.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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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최악' 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6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단숨에 읽게 만드는 마력의 소설인데요. 과거 20대 시절 일본 소설에 한참 빠져 있을 때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었습니다. 작가 소개를 먼저 하자면 쉽고 유머러스한 문체가 좋았고 작품마다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잔혹하지만 리얼하게 일본 사회의 모순을 배경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의 작가입니다. 대표작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했던 '공증그네'가 있습니다.

 

소설은 최악의 상황의 놓인 세 남녀를 주인공으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 되었다가 결말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제가 좋아하는 전개 방식이기도 하지요. 갈수록 최악의 놓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2008년에 출간된 소설이라 현재와는 시대적이나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고 공감이 안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해도 너무하는 상황에 놓이는 인물들을 보며 덩달아 화도 나고 저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과연 어떨까 상상도 하고 다시 봐도 몰입돼서 재밌게 즐겼습니다.


줄거리 

거품경제의 붕괴로 불황에 파리만 날리는 사업,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오는 주문은 금요일에 주문을 해서 월요일에 납품하라는 긴급 독촉 주문 건들 뿐이다. 일류 메이커 기업들이 하청에 하청을 주다 보니, 주문의 제일 밑바닥에서 일을 처리하는 하청 업체의 공장들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고, 야근이나 주말 잔업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만 하는 정도다. 이리저리 시달리면서 간간이 유지도 힘든 판에, 공장 소음으로 강력하게 민원을 거는 이웃 주민들과의 마찰로 답답한 지경이다. 게다가 뭔가 시키기만 하면 사라지는 무능력한 직원 때문에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고 있는 철공소 사장,

가와타니 신지로.

‘대체 무엇을 위해 나는

우왕좌왕했던가.’

툭하면 외박을 일삼는 데다 남들 다 다니는 고등학교마저 중퇴한 날라리 여동생, 아부에는 천재적인 상사와 성희롱을 일삼는 지점장, 그리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공요금 납부라는 명목으로 은행으로 출근하는 치매 노인, 더 이상 지겨운 현실이 싫어 꾹꾹 참으면서 버티다 홧김에 애인의 친구와 자버린 은행원. 성과주의와 출세를 위해 줄 서는 데 급급한 남성 중심의 은행 조직에 깊은 상처를 받은 영혼,

후지사키 미도리.

‘정말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거구나.’

환각제인 톨루엔을 파트너와 빼돌리다 야쿠자에게 들켜 6백만 엔에 타협하고, 돈을 구하기 위해 컴퓨터 가게를 털었지만 파트너가 모조리 들고 날라버린다. 다시 야쿠자에게 잡혀 시달리다, 여자 친구를 인질로 돈을 요구하는 야쿠자들 때문에 돈 구하기에 혈안이 된다. 그러다 여자 친구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자 야쿠자를 칼로 찌른 후, 결국 은행 강도로 내몰리는데……. 야쿠자뿐만 아니라 경찰에도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스무 살 청년,

노무라 가즈야.

‘청춘이란 이런 것인가.’

신지로와 미도리, 그리고 가즈야 그들은

운명처럼 은행에서 조우한다.

가즈야는 여자 친구와 2인조 은행 강도가 되어 미도리가 일하는 은행에 난입하고, 융자를 거절당해 화가 난 가와타니 사장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끌려 자연스레 가즈야를 돕고 가세한다. 이들에게 스스로 인질이 되어버린 미도리는 은행에서의 도주를 감행하는데……. ​

출처: 출판사 책 소개


어째서 늘 일이 이렇게 풀리는가. 조금이라도 좋은 일이 생기면 그보다 몇 곱절 나쁜 일이 덮쳐들었다. 마치 인간의 운명을 갖고 놀듯이 어딘가에서 악마가 킬킬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지겹다. 죽어도 상관없다. 애초에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내게 주어진 카드가 너무 형편없었던 거다. 그걸로 뭘 어떻게 만들어내라는 건가. 깡그리 바꿔버리지 않고서야 대체 뭘 어떻게 해보라는 건가. 내 인생은 끝까지 패배만 이어질 것이다. 단 한 번의 인생에 모조리 패배할 패만 쥐여주고서, 하느님은 이걸 어떻게 설명할 작정인가. 이제 됐다. 포기했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여기서 목숨을 건져봤자 앞으로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건가. 있을 리가 없다.

생에 대한 갈망이 슬슬 사라지고 있었다. 살아갈 기력이 완전히 시드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 본문 중에서

 

과거 시점의 소설이지만 현재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갑과 을의 세계 속에 여전히 허덕이며 살고 있고 불운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청춘의 방황,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해도 당당히 나설 수 없는 현실... 씁쓸합니다. 특히 이제 40대가 되고 자식도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영세 철공소 사장 '신지로'의 이야기는 정말 가슴이 아플 정도로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세상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나름 신용을 지키고 이웃 간에 불화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을 하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결국 폭발해 버리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과정이 잔혹하고 슬펐습니다.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세대별 각박한 인생 살이를 슬프지만 유쾌하게 그려낸 작가의 스타일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고 결말에 가서는 그래도 살아나가는 게 인생이다라는 메시지를 안겨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두껍지만 빠른 전개와 극적인 상황 연출로 단숨에 읽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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